언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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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故) 홍일식 교수님을 추모하며

김 정 우(고려대학교 교수)


9월 11일 이른 오후, 저는 한창 수업 중이었습니다. 오전에 선생님을 뵈러 간다던 후배 교수의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일단 끄고 수업을 계속했는데, 전화가 곧 다시 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짐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짐작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1983년이었습니다. 당시 학부 3학년생이었던 저는 우연한 기회에 고려대학교 부설 <민족문화연구소>에 설치된 <중한대사전편찬실>에서 선배들의 잔심부름을 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그때 소장이셨던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그 이후 가까운 거리에서 선생님을 계속 뵐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 선생님은 명확한 인문학적 비전을 갖고 계신 리더이셨습니다. <민족문화연구소>를 대한민국 한국학 연구의 중심 연구소로 성장시키겠다는 비전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기 위해 거대 프로젝트였던 『한국문화사대계』, 『한국현대문화사대계』, 『한국민속대관』 등의 발간을 주도하셨고, 연구원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연구비 조성, 인프라 구축, 시설 확충 등을 위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분이셨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우리 문화의 힘이 나아갈 길을 앞서 보는 혜안을 갖고 계셨습니다. 1981년 ‘문화영토론’을 제안하셨습니다. 인류사에서 분쟁의 불씨가 되었던 정치적·경제적 영토를 넘어 선한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문화영토를 확장시킴으로써 인류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것이 ‘문화영토론’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50여년 후, 한류가 지금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퇴직 후에는 (재)문화영토연구원을 설립하셔서, 문화영토론의 체계화와 확산에 관한 연구를 지원해주고 계십니다. 1986년에는 당시 총장이셨던 김상협 총장께 “앞으로는 우리 한국어만 가르치고도 세계 어디서나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겁니다.”라는 호언장담과 함께 ‘한국어·문화연수부’를 설립하셨습니다. 이는 현재 매년 1만여 명의 외국인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고려대학교 <한국어센터>로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중국과 수교하기 이전에 중국의 발전을 예기하시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중한대사전』의 편찬을 주도하시기도 하였습니다. 1994년~1998년에 고려대학교 제13대 총장으로 재직하시면서 고려대학교의 발전에 많은 힘을 보태셨고, 평생을 고대인(高大人)으로 살아오시며 고려대학교의 발전을 염원해오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왕성한 사회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건전한 가치관을 갖고 발전하는 데에 기여하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게 있어 개인적으로 선생님에 대한 가장 중요한 기억은 위의 두 가지입니다.

 

  선생님의 발인식이 있었던 9월 14일, 전날부터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쏟아지는 빗속을 달려 원주의 선영으로 가는 길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화창한 날씨 속에서 선생님을 잘 모시고 싶었지만, 날씨가 제 마음 같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러나 선영에 도착하고 하관 시간이 가까워오면서 기적처럼 날이 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과 후배들, 제자들이 모여 선생님을 양지바른 원주 부론면 언덕에 잘 모실 수 있었습니다. 먼저 고인이 되신 사모님과 다시 만나셔서, 이승에서 못다한 행복을 누리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의 스승이신 선생님, 이제 부디 좋은 곳에서 고통없이 편안한 하루하루를 보내시기를 바라옵니다. 마지막으로 남기신 (재)문화영토연구원에서 선생님의 유지를 받들어 ‘문화영토론’을 잘 발전시켜 나갈 것을 다짐하며, 존경과 눈물로 선생님의 극락왕생을 엎드려 빕니다.

 

  진심을 다해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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